맨위로가기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은 삼별초가 몽골에 대항하여 항쟁했던 유적지이다. 토성, 돌쩌귀, 기와, 자기, 연못터 등 당시의 유적들이 발견되었으며, 구시물, 옹성물, 장수물 등과 같은 유적지의 지명에는 삼별초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유적지 내에는 관리사무소, 휴게소, 전시관, 항몽순의비 등이 있으며, 인근의 파군봉(바굼지오름)은 몽골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항파두성은 고성천과 소왕천을 끼고 있어 천연적인 요새 지형을 갖추고 있으며, 1977년부터 정비 사업이 진행되어 삼별초 항쟁의 고고학적 증거가 확보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제주특별자치도의 성 - 제주성지
    제주성지는 옛 탐라국 수도 부근에 축조된 성곽으로, 왜구 침입과 자연재해로 여러 차례 증축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어 현재는 일부 성벽만 남아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보존 및 복원 중이다.
  • 제주특별자치도의 성 - 환해장성
    환해장성은 13세기 고려 시대 삼별초의 봉기 당시, 그들의 세력 확장을 막고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제주도 해안에 축조 및 보수된 방어 시설로, 동아시아 해양성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적 - 삼성혈
    삼성혈은 고씨, 양씨, 부씨의 시조인 삼신인이 솟아났다는 전설이 있는 탐라국 건국 신화와 관련된 제주도의 중요한 유적이다.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적 - 제주 고산리 유적
    제주 고산리 유적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위치한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한반도 신석기 문화 기원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며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빗살무늬토기를 포함한 다양한 유물과 움집터, 조개무덤 등이 발견되어 당시 생활상을 보여준다.
  • 삼별초 - 삼별초의 항쟁
    삼별초의 항쟁은 최씨 무신정권의 군사조직인 삼별초가 원종의 친몽 정책과 해산 명령에 반발하여 1270년 강화도에서 시작, 배중손을 중심으로 왕족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며 진도와 제주도에서 3년간 고려-원 연합군에 맞서 싸웠으나 1273년 진압되어 고려의 몽골 지배 강화와 원의 제주도 직접 통치를 가져왔으며, 민족적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되지만 무신정권의 잔재라는 비판도 있다.
  • 삼별초 - 최우
    최우는 최충헌의 아들로 고려 무신정권을 계승하여 정방과 서방을 설치하고 강화도 천도를 단행했으나, 사치스러운 생활로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다 1249년에 사망했다.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위치 정보
기본 정보
이름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
로마자 표기Jeju Hangpaduri Hangmong Yujeok
지정 번호 (사적)396
지정일 (사적)1997년 4월 18일
주소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1126-1번지 외
면적1,097,490m2
시대고려
추가 정보 (항파두리항몽유적지)
지정 번호 (기념물)28
지정일 (기념물)1976년 9월 9일
해제일 (기념물)1997년 4월 18일

2. 유적

고려 원종 11년(1270) 몽골과의 강화에 반대하며 강화도에서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들어온 삼별초가 최후까지 항쟁하다 원종 14년(1273) 전원 순국한 마지막 보루였다.[1] 이곳은 1997년 4월 18일 사적 제396호로 지정되었다.

당시에 쌓았던 토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유적으로 돌쩌귀, 기와, 자기, 연못터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김통정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장수물을 비롯하여 구시물, 옹성물, 그리고 삼별초 군사들이 활쏘기 연습을 했다고 전해지는 살 맞은 돌 등 여러 유적이 있다. 현재 유적지 내에는 관리사무소, 휴게소, 전시관, 순의문, 그리고 삼별초의 넋을 기리는 항몽순의비 등의 시설이 있다.

2. 1. 토성

김통정 장군은 삼별초군의 거점지인 항파두리에 흙을 이용하여 토성을 쌓아 여몽연합군과 대항하였다. 이 성은 해발 약 190m~215m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고성천이, 서쪽으로는 소왕천이 흐른다. 지형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남고북저 형태이며, 특히 북쪽은 토성 부근이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서쪽은 단애를 이루는 하천이 있어 천연적으로 성을 쌓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토성은 주로 자갈이 약간 섞인 황갈색 토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흙은 찰기가 매우 강하여 토성을 쌓기에 적합한 성질을 지녔다. 고려 원종 11년(1270)부터 삼별초가 마지막까지 항쟁하다 원종 14년(1273) 전원 순국하기까지 사용된 마지막 보루였으며, 당시에 쌓았던 토성의 일부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2. 2. 항몽순의비

몽골군에 맞서 싸우다 숨진 삼별초 군인들의 넋을 기리고자 세운 비석이다. 비석 앞면에 새겨진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라는 제자(題字)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2. 3. 돌쩌귀

삼별초군이 항파두성 성문의 밑틀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주춧돌이다. 항파두성에는 네 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돌쩌귀 10기가 보존되어 있다.

2. 4. 살맞은 돌

삼별초군이 궁술을 연마할 때 과녁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입석이다. 극락봉에 위치하며, 암석 표면에 화살촉이 박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2. 5. 장수물

김통정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깃든 샘이다. 삼별초를 이끌던 김통정 장군이 몽골군에게 쫓기다가 항파두리 토성 위에서 뛰어내렸는데, 이때 바위에 발자국이 패여 그 자리에서 샘물이 솟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 6. 구시물

성밖 서민 및 병사들의 음용수로 사용하였던 물이다.

2. 7. 옹성물

항파두성 북쪽 극락사 사찰 경내에 있는 샘물이다. 삼별초가 항파두리에 주둔할 당시 귀족 계급들이 음료수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8. 파군봉 (바굼지오름)

파군봉(바굼지오름)은 해발 약 100m에 이르는 봉우리로, 몽고군의 상륙부대를 맞아 삼별초가 항전했던 전적지다.

2. 9. 고성천과 소왕천

항파두리 항몽 유적은 동쪽으로 고성천, 서쪽으로 소왕천이 흐르는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성의 동편에는 고성천이, 서편에는 소왕천이 흘러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했다. 특히 서쪽의 소왕천 쪽은 단애(깎아지른 듯한 절벽)를 이루고 있어 방어에 더욱 유리했다. 이 두 하천은 항파두성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천연적인 방어 요새로서 기능했다.

3. 성과

1977년부터 토지 매입, 토성 복원, 발굴 조사 등 연차적인 정비 사업이 계속 추진되고 있다. 특히 2011년에 실시된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지 시굴 조사 결과는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이 조사를 통해 항파두성의 중심부인 내성의 규모를 파악하고, 내성 안에 주요 시설물(건물지)이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또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제주도에서의 삼별초 대몽 항쟁 본거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고학적 증거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